진정한 벤처 정신이란...

우리는 - 특히 스타트업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한다. "벤처 정신으로 한번 해보는거야..."
'벤처정신'이라는건 정확히 어떤 정신을 말하는걸까? 나도 벤처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벤처정신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어쩔때는 남발)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하라고 하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냥 뭔가 힘든 상황에서 굳은 각오를 가지고 남들의 시선과 비난을 받으면서도 하고자 하는걸 추구하는 뭐 그런 정신이 벤처정신이 아닐까 싶다.
오늘은 이런 벤처정신을 벤처가 아닌 일상생활에서 악조건을 무릅쓰고 실천하고 있는 어떤 일본인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분에 대한 글을 읽은 후로 나는 어렵거나 힘든일에 직면했을때 항상 이 분의 얼굴을 떠올리고 다시 한번 스스로의 정신을 중무장하고 전쟁터로 뛰어들어간다. 여기 그 놀랍고도 대단한 이야기를 공유한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에 히데아끼 아카이와씨는 미야기현의 항구도시 이시노마키 사무실에서 한주의 업무를 마감하고 있었다. 이 아저씨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시는지는 솔직히 아무도 모르지만, 앞으로의 활약을 감안해 짐작해보면 분명히 무슨 특공대원이나 야쿠자 행동대원임이 분명하다. 
그가 퇴근준비를 하고 사무실을 나오려고 하는 찰라에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이었다. 하지만, 그냥 지진이 아니었다 - 일본이 지금까지 경험했던그 어떤 지진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초대형 9.0 지진이었다. 땅은 흔들리고, 빌딩들은 엿가락처럼 휘다가 무너지고, 간판은 종이처럼 하늘을 날라다녔다. 그리고 2년같이 길게 느껴졌던 2분 동안 일본 열도는 마치 놀이동산의 디스코 팡팡과 같이 미친듯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시노마키시에 덮친 불행은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아니, 이제 단지 시작일뿐이었다. 강진과 함께 발생된 높이 10미터 이상의 쓰나미는 3월 11일 아침까지만해도 162,000명이 복작거리던 이 도시를 순식간에 수심 3미터짜리 작은 호수로 만들어버렸다.

히데아끼 아카이와씨는 서둘러서 집으로 달려갔지만, 이미 그의 집을 비롯한 도시의 모든 집들은 물에 잠기어서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를 더욱 더 미치게 만들었던 사실은 20년 동안 같이 살았던 그의 와이프가 물밑 어디선가에 갇혀있다는 것이었다.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와이프는 미쳐 쓰나미를 피하지 못했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통화가 안되었다. 수심은 계속 깊어져만 갔고, 이제 해는 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자동차를 비롯한 온갖 똥과 쓰레기가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고 현장에 늦게 도착한 구조대원들은 현재로써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다고 했다. 아카이와씨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거는 그냥 앉아서 군인들이 빨리 도착해서 저 쓰레기더미 어디선가에서 와이프를 구하기를 바라는거였다. 그때까지 와이프가 죽지 않았다면 말이다. 이미 이시노마키시에서만 1만명 이상의 실종자가 발생하였고, 그의 와이프가 발견될 확률은 거의 제로였다.  

자, 이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이 상황이었으면 그냥 한숨만 팍팍 쉬면서, 정부랑 대통령 욕 졸라 하고 혼자 살아있음에 괴로워했을 것이다. 하지만 히데아끼 아카이와씨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는 하늘이 반으로 쪼개지더라도 그의 와이프를 저 더러운 똥물에서 가만히 죽게 놔둘 위인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구할 생각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이후, 그가 어떻게 그리고 어디서 잠수복과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그 짧은 시간안에 구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미스테리이다. 나는 지금 따뜻한 캘리포니아의 집에서 목이 말라 죽겠는데 콜라 하나 못 찾아서 온 집안을 해매고 있는데, 이 일본 아저씨는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이 절대절명의 순간에 산소통, 잠수복 그리고 스쿠버 장비를 어떻게 구할 수 있었을까. 정말로 뜻이 있다면 길이 있고, 강한 의지만 있다면 사막에서도 물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 맞는것일까?
뭐, 그가 어떻게 이 장비들을 구했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그는 와이프를 구하기 위해서 스쿠버 장비를 구했다는 점이고 그는 잠수 장비로 중무장을 하고 바로 물로 뛰어 들어갔다. 와이프를 구출하거나, 아니면 구출하려고 노력하다가 물안에서 죽거나 그런 각오로 뛰어들어 간것이다. 
한가지 재미있는거는 - 그리고 다행임 - 아카이와씨가 이미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다룰줄 안다는 것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 의하면 그는 와이프를 바다에서 서핑하면서 만났다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유추해보면 그가 이미 스쿠버를 할 줄 알았다는 결론이 생긴다. 어쨌던간에 그건 상관없다. 아마 이 사람은 스쿠버를 전혀 못해도 무조건 물속으로 뛰어들었을테니까. 그는 지진이던 쓰나미던 말도 안되는 자연재해가 사랑하는 가족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그런 현실을 받아들일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차가운 물속으로 깊이 잠수해서 그의 집이 있던 위치로 헤엄쳤다.
물속은 정말 가관 그 자체였다고 한다. 자동차, 건물잔해, 아직 살아있는 전선 등등 온갖 대형 쓰레기들을 마치 오락에서 주인공이 장애물들을 피하듯이 그는 피해다녔다. 장난감 자동차와 같은 떠다니는 차들을 피해갔고, 깨진 유리조각들에 산소통이 긁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수영하면서 그의 집을 찾았다.
아카이와씨는 이 와중에서도 평상심을 잃지않고 한가지 목표 - 와이프 구출 - 에만 온 정신을 집중했고, 그의 집을 발견할수 있었다. 다행히도 집안에는 얼굴만 물과 천장 사이에서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와이프가 살아있었다. 그는 와이프에게 미리 준비해간 예비 산소통을 입에 물려주고 안전하게 물위로 나왔다. 아카이와씨의 와이프는 무사히 구출되었다.  

하지만, 히데아끼 아카이와씨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직 할일이 남아있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아니 군대도 못하는걸 단독으로 물속에 들어가서 와이프까지 구출했는데 또 무슨 할일이 남았단 말인가?"라는 질문을 하겠지만, 상황은 더욱 더 흥미진진해진다.아카이와씨의노모 또한 이시노마키에 살고 있었으며 그녀 또한 아직 발견되지 못했다. 
일단 아카이와씨는 임시보호소들을 시작으로 온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어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이미 쓰나미가 도시를 습격한지 나흘이 지났고 그때까지 노모의 행방을 찾지 못하자 아카이와씨는 그가 뭘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아직도 도시는 물에 잡겨있었고 (물론 수심은 약간 낮아졌다) 구조대원들은 여전히 꾸물대며 그가 원하는만큼 빠리빠리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의 운명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 해결하기로 결심하고 다시 한번 스쿠버 장비를 착용하고 차가운 물로 뛰어들었다.
물속은 여전히 춥고, 컴컴하고 위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와이프를 찾을때와같이 무서울 정도로 침착하게 집중력하면서 어머니를 샅샅이 찾기 시작했고 기적과도 같이 어떤 집의 지붕에 매달려있는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의 어머니를 발견했다. 그리고 마치 동화와도 같이 그는 노모 또한 안전하게 구출을 했다. 

여기서 이야기가 끝은 아니다 ㅋㅋ.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점은 바로 히데아끼 아카이와씨는 우리와 같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올해 43살인 그는 자신의 가족들의 안전은 보장되었지만 아직도 어디에선가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일본 시민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그 이후 매일 자전거를 타고 순찰을 돌고 있다고 한다. 그의 유일한 장비는 맥가이버칼, 물통, 후레쉬 그리고 썬글라스이다. 

히데아끼 아카이와씨가 우리에게 몸소 보여준 그의 행동 - 이게 바로 나는 진정한 벤처정신이라고 생각한다.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 우리는 백만가지의 이유와 변명을 대면서 좌절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게 훨씬 쉽다. 하지만, 그런다고 누가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원한다면 내가 직접 두손 걷어붙이고 해결해야 한다.  아카이와씨가 일본 정부에서 그의 와이프와 어머니를 구해주길 기다렸다면 두 여성은 이미 죽었을것이다.
청년실업을 정부에서 해결해 줄 수 없다. 자신의 불운을 시대를 탓하고, 정부를 탓하면 기분은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개선하려면 모든걸 내가 직접 해결해야한다. 쓰나미에 맞선 히데아끼 아카이와씨처럼. 
나는 이 글을 읽은 후 부터 아카이와씨의 사진을 오려서 벽에 붙여 놓았다. 오늘 아침도 이 사진을 보고 다시 한번 적군들로 우글거리는 전쟁터로 뛰어들어 승리하는 상상을 하면서...스스로를 벤처정신으로 재무장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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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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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의 트래픽에 대하여 분석한 자료. ROI research에서 만든 보고서입니다.

Account 가지고 있는 Site를 보면

Facebook 이 94%, You tube 54%, Twitter 42$, Google+ 38%, Linked in 23% Pinterest 17% 이네요.

역시 Facebook 이 가장 높은 Account를 가지고 있네요. 하지만 Linked in 이 주가는 계속 잘 유지되는 반면 Facebook은 곤두박질중이라는.

보고서 내용중 재미있는것을 몇가지만 골라보면.(예상되는것들이긴 하지만)

1. Facebook은 95% 사용자들이 하루에 한번 접속한다고합니다.(아닐것 같은데..)

2. Facebook은 여성들이 더 자주방문.

3. Google+는 50대 이상이 더 자주방문 (놀랍네요;;;)

4. Linked in 은 Men이 더 자주 방문.Parents들도. (나이대가 있고, 직장생활을 활발히하는(이직,경력관리) 사람들이 많다고 함)

5. youtube는 18~29 age가 자주 방문


확실히 Facebook이 방문/Traffice 발생시키는 횟수등은 높네요. 하지만 수익모델이 생각만큼 잘해주지는 못해서 주가가 떨어지는것 같습니다.

http://www.slideshare.net/performics_us/performics-life-on-demand-2012-summary-deck


Jae-hwan Park.

KAIST Business School
 MBA (T-MBA) Candidate

010   9181    2901
triones24@gmail.com
triones@business.kaist.ac.kr


Posted by A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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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창업을 하는 이들은, 사업을 일궈 일가를 이루고 싶은 이들은, 몇년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프로그램스의 창업자인 박태훈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영악하다고 할 정도로 그는 창업을 일찌감치 결심한 뒤 딴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으로 사업을 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왔다. 그런 박 대표도 사람을 모으고, 아이템을 선정하고, 성과물을 내기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그가 결국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 갈 수 있었던 것은 오랫동안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7년을 준비한 창업

서울과학고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산학과 03학번으로 입학한 박 대표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창업을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학교 분위기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창업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학교에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선배들이 졸업하고 의대를 가거나 고시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엔지니어들이 정말 다니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은 게 그의 꿈이었지만 사실 롤 모델이 없었다. “그 당시엔 구글도 아직 지금처럼 알려지기 전이었고 구글코리아가 설립되지도 않은 시절이어서 막연한 이상만 있지 뚜렷한 타깃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장 창업을 하기엔 부족한 게 많다고 판단돼 여러가지 방면의 다양한 경험을 해보자고 우선 다짐했죠.”

 역할모델도, 창업모델도 찾지 못한 대학생 박태훈이 선택한 것은 창업을 위한 내공을 쌓는 것. 공대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그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다. 카이스트 내 방송동아리인 VOK를 한 것도 그런 경험쌓기의 일환이었다. 

 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넥슨에서 벽역특례로 근무를 할 때도 그는 동아리 활동을 꾸준히 했다. 대학들의 연합 동아리인 S&D는 경영과 관련된 공부를 하는 동아리였다. “기업을 경영하려면 경영에 대한 공부도 좀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심산. 경영학과 학생도 아니었지만 동아리 활동을 주도적으로 한 그는 여기서 회장까지 지냈다. 병특 시절 1년6개월 정도 S&D에서 활동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사람. 경영학을 전공으로 한 강석훈, 원지현, 김민석 등 훗날 창업을 함께 하는 이들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가 함께 창업을 하고 싶어 점찍어 놨던 인물은 서울과학고, 카이스트 1년 후배인 오경윤. 2009년 병특을 마치고 복학을 했지만 창업 열풍이 일던 시대적 분위기와 그의 오랜 열망이 맞아 떨어지면서 그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010년 6월 12일. 박태훈은 후배 오경윤을 불러내 둘이서 강남역 빕스(VIPS)에서 식사를 하면서 제안을 했다. “우리 같이 앱 만들자”

◆소셜커머스에서 얻은 두 가지 교훈

오래전부터 박태훈의 창업에 대한 열정을 알고 있던 오경윤이 두말할 것 없이 찬성하면서 둘의 창업 여정이 시작됐다. 하지만 처음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때마침 국내에 소셜커머스 열풍을 불러일으킨 티켓몬스터가 서서히 뜨고 있던 시점이었다. “소셜커머스를 모아서 보여주는 메타서비스를 만들자” 그들은 이렇게 시작했다.

 회사이름을 프로그램스의 철자를 변형한 Frograms로 짓고 개인 사업으로 시작했다. 둘이 만나 결심을 하고 3개월만인 2010년 9월 소셜커머스 메타사이트인 ‘쿠폰잇수다’를 뚝딱 만들었다. 소셜커머스에서의 제품 품질 문제나 가격 문제를 지적하는 도발적인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는 등 눈길을 끄는데 성공하면서 매체에 보도는 많이 됐다. 그렇지만 사이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이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였다. 소셜커머스 사업은 비용 투입이 많이 필요한 사업이었다. 무엇보다 이 사업의 핵심은 영업과 마케팅이었다. 

 “창업자들이 영업이나 마케팅에 특화되지 못했는데 그런 역량이 가장 필요한 분야에서 창업을 하니 쉽지 않았죠. 그래서 8개월여만인 2011년 4월 소셜커머스 사업을 접었습니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업을 접었지만 손해만 본 것은 아니었다. 우선, 사람을 건졌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핵심 창업 멤버인 오경윤 CTO(최고기술책임자)가 끝까지 함께 했다는 것, 그리고 경영 동아리 시절 알게된 강석훈, 원지현, 김민석 등 세 사람이 소셜커머스 사업 초창기 사업에 합류해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함께 운명을 개척하는 일에 계속해서 동참했다는 거였다.  

 사람 말고 건진 게 있다면 뭘까. “두 가지 교훈을 얻었습니다. 우선 파트타임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거였죠. 당시 우리가 고용했던 직원들 중에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한 목적도 있었죠.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치열한 경쟁에서 이길 수가 없더군요. 인생을 걸고 덤벼들어도 될까말까한 데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사업을 하자는 거였습니다. 소셜커머스 사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강점이 있는 분야가 아니란 것을 알면서도 했습니다. 뜨고 있는 사업이니 이 분야에서 돈을 벌어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생각이었죠. 내가 하고 싶고, 잘 하는 분야에 인생을 걸고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개인화 서비스가 미래다.

이런 교훈을 얻은 이들이 심기일전해 만든 서비스가 영화 추천 서비스인 왓차(www.watcha.net)다. 8월 16일 첫 선을 보인 이 서비스는 영화에 대한 평가를 하면 할 수록 좋은 영화를 추천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는 서비스다.

 이 서비스를 만들게 된 계기는 영화를 좋아하는 창업자들이 검색창에서 영화를 검색하다가 나왔다. “좋은 영화를 추천해달라는 검색을 사람들이 정말 많이하더라구요. 그런데 검색 서비스에서는 개개인의 취향이나 성별, 성격 등에 전혀 관계없는 영화 추천이 무작위로 올라옵니다. 개인에 특화된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가장 접근성이 용이한 영화를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왓차는 사람들의 영화에 대한 평가 DB(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한다. 네이버 등 기존 사이트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사이트 방문객으로부터 직접 수집한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그래도 개개인의 입장에서는 어려운 일도 아니고, 나름 재미도 있다. 영화를 10개 이상 평가하면 그때부터 그 DB를 기반으로 내 취향 분석이 시작되고 나에게 적합한 영화를 추천받을 수 있다. 

 여기서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추천할 영화를 선택하는 알고리즘이 서비스의 핵심. 개발력이 중요한 이유다. 그래서 현재 회사 직원 13명 중 7명이 엔지니어로 구성돼 있다. 영업과 마케팅에는 자신이 없다고 스스로를 평가절하했지만, 개발에는 자신이 있다고 스스로 평가했던 박태훈 대표다. 이런 점이 다른 사람들 눈에도 띄었나 보다. 올 봄 그는 김범수 의장이 설립한 벤처투자회사 케이큐브벤처스의 1호 투자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개발력으로 승부를 좌우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하기로 방향을 전환한 뒤, 그런 자신감 때문인지 그는 향후 계획까지 착실하게 세워놓고 있었다. 우선, 조만간 영화추천 서비스의 뒤를 이을 또 다른 추천 서비스가 출시될 예정이다. 이런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은 그가 ‘서비스의 개인화’에 미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 “시간은 제한돼 있는데 쏟아지는 정보는 너무 많고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많쟎아요. 그런데 포털이나 개별 사이트들이 제공하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아직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 거죠.”

 우선은 사용자들을 모아 DB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 그 다음엔 이를 기반으로 개인 취향에 맞춘 광고를 하거나 다운로드 링크 연결시 수수료를 받는 등 몇가지 수익 모델이 가능하다는 게 박 대표의 구상이다. 벤처업계에서 좋은 개발자들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로 손꼽히는 프로그램스. 박 대표가 꿈꾸는 개인화 서비스의 모델은 이들의 손과 머리에 달려있다.

by wonkis
출처 : http://limwonki.com/535

Posted by Ar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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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s://keyassist.tistory.com BlogIcon Knowledge Designer 2012.09.03 10:0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Customized 또는 Personalized Service가 추세임은 분명하지요:)
    니즈의 다각화로 인해 벤처의 사업기회는 분명 존재!

    • Favicon of https://arsens.tistory.com BlogIcon Arsen 2012.09.03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넵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화서비스는 알고리즘이 쉽지 않다는것.
      어느정도 간단히 만드는것이야 할수 있지만, 정말 완벽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건 불가능하고. 완벽에 가까워지려는것이죠